경상북도청소년성문화센터

최근 들어 ‘우리 아이 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보호자들이 많다.

특히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매체를 통해 잘못된 성 정보를 접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라 보호자들 사이에선 큰 고민거리다. 요즘에는 온라인을 통해 잘못된 경로로 성 정보를 접한 뒤 십대들의 범죄로까지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호자들 역시 공교육 과정에서 제대로 된 ‘몸’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오히려 아이에게 기성세대의 부적절한 관점과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는 경우가 많고, ‘나중에 크면 다 알게 돼’라는 식으로 아예 손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등 교육 현장에서 몸·젠더 교육을 확산하고 있는 교사들은 “성교육의 틀을 확장해 이제는 몸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전인 초등 저학년 때부터 시작하는 게 가장 좋다”고 강조한다.

■ 국·영·수보다 중요한 게 몸 교육

보호자만 준비돼 있다면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게 몸 교육이다.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를 펴낸 김서화(서울대 여성학 협동 박사과정) 작가는 “초등 1~3학년 등 저학년 시기의 아이들은 성을 비롯해 그 어떤 주제라도 부모와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 이 시기가 ‘우리 아이 몸 교육’의 골든타임”이라고 말했다.

먼저 도화지를 준비해 가족들 각자의 몸 그림을 그려본다. 초등 1~3학년 때는 이렇게 ‘내 몸’ 그리기를 통해, 다른 사람이 만졌을 때 싫은 부분 표시하기 등의 활동을 해보는 걸 추천한다. 아이와 자연스레 몸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때 보호자가 일방적으로 아이에게 가르쳐주는 식보다는 함께 동등한 입장에서 참여해야 효과가 크다.

이를테면 “아빠는 지하철에서 누군가 지나가며 손등을 스칠 때 기분이 안 좋더라”, “엄마는 남이 허락 없이 어깨를 만지면 싫던데. ○○는 누가 뒷목을 만지면 기분이 안 좋은가 보구나” 등 일상 대화에 녹여내는 게 좋다. 몸이 단순히 먹고 뛰고 자는 ‘기능’만 하는 게 아니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읽히고 이해된다는 것도 알려주자.

초등 4~6학년 등 고학년에 올라간 자녀와는 보호자가 양질의 몸 교육 콘텐츠를 함께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김 작가는 “아이가 ‘엄마, 야동은 어디서 보는 거야?’라는 질문을 하거나 구체적으로 남자·여자의 몸에 관해 궁금해하기 시작할 때 ‘성관계에서 동의의 의미-차(tea)로 이해하기’라는 영상물을 함께 보는 걸 추천한다”고 했다. 몸 교육의 핵심은 성별마다 다른 신체와 그기능을 생물학적으로 이해하고, 각자의 몸에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다는 걸 뚜렷하게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 ‘생리 수다회’ 여는 교사들

공교육 현장에서 ‘몸 교육’을 중시하는 교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김수진 교사는 다양한 ‘내 몸 알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예민함을 가르칩니다-교실을 바꾸는 열두 가지 젠더 수업>의 공저자인 김 교사와 정윤식교사는 생리대를 활용한 몸 교육 반응이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정윤식 교사는 “생리 자체를 부끄럽고 숨겨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문화가 여학생들을 특히 위축되게 만든다”며 “생리대를 만져보고 물감으로 찍어보는 활동 등을 통해 다른 성별의 몸을 더욱 이해하게 된다”고 했다. “어느 날 보니 남학생들이 ‘에스엘디'(SLD)라는 은어를 만들어 생리하는 여학생들을 찾아내 놀리고 있더라고요. 여학생이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을 ‘들키면 큰일 나는 일인 양’ 감추게 하는 교실 문화를 바꾸는 데에는 몸 교육 수업이 효과가 좋았습니다.”

■ 몸에 걸치는 옷도 교육 자료다

김수진 교사는 “옷은 아이들의 욕구가 반영되는 취향 표현의 수단이기도 하고 자아 및 가치관을 나타내기도 한다”며 “아이들이 자기 몸에 대한 자신감과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몸·젠더 교육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집에서 아이와 옷들을 꺼내 놓은 뒤 해볼 수 있는 쉬운 몸 교육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입는 옷들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보호자도 함께 참여해보길 권합니다.”

먼저 집안에 있는 옷을 모두 꺼내 놓은 뒤 아이와 ‘평소에 좋아하는 옷, 싫어하는 옷, 불편한 옷, 편한 옷’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눠본다. 그 가운데 마음에 드는 걸 하나씩 가져와 상·하의를 조합해본다. 이때 보호자는 ‘남자애가 무슨 그런 옷을 골라’ ‘여자애가 치마를 입어야지’ 등의 말은 하지 않도록 한다.

아이들은 이 활동을 통해 ‘옷은 꼭 성별에 따라 입을 필요가 없다. 치마와 바지를 입었을 때 수줍어지거나 대범해지는 등의 태도 변화가 있었다’ 등을 함께 토론하며 자연스레 ‘몸과 성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보호자의 높은 젠더 감수성을 필요로 하는 활동이기에 미리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학교에 페미니즘을> <아홉 살 성교육 사전: 남자아이 몸> 등 관련 책을 읽은 뒤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 몸 교육은 자존감 교육

아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성장 과정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도 보호자의 의무다. 성교육 전문가들은 “임신과 출산 등 재생산에만 초점을 맞춘 구시대적 성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섹스와 피임, 성병 등 실제 몸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이고 다양한 몸 교육 정보를 제공해주면 아이들도 더 진지해진다”고 입을 모은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와 독일에서는 유아기부터 연령별 몸 교육을 진행한다. 스웨덴은 세계 최초 ‘아동 성교육’을 의무화했다. 중학생에게는 콘돔을 무료 보급하며 피임 방법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도 한다. 교육 선진국인 독일에서도 만 10살 학생들에게 출산 장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몸에 대한 체계적 교육을 시행한다. “애들이 그걸 알아서 뭐 해!”라며 다그치고 숨기기 급급한 한국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 수가 많진 않지만 우리나라에도 지금 시대에 맞는 몸 교육, 성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들이 있다. 서울 서대문구 소재 탁틴내일청소년성문화센터는 체험관을 활용한 맞춤 성교육 및 섹슈얼리티 교육, 찾아가는 성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관계자는 “여자와 남자의 신체 차이는 인지하되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콘텐츠로 프로그램을 진행해 반응이 좋다”며 “몸 교육의 최종 목표는 아동·청소년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우고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족형 몸 교육·성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도 있다.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는 여중생 및 남중생을 위한 성교육 캠프, 몸동작 프로그램을 비롯해 부모와 함께하는 사춘기로의 여행 등 가족형 성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박현이 부장은 “아동·청소년기에 부모와 함께하는 몸 교육은 자존감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며 “신체 변화에 따른 감정과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마음의 힘’도 단단해진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전국 56개 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는 아동·청소년 체험형 성교육, 방문 및 그룹형 성교육, 자기방어 훈련, 10대 여성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가족형 성문화 프로그램 등 다양한 콘텐츠를 준비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 누리집(wesay.or.kr)에서 문의하면 된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출처 : 한겨레신문